당신은 프란츠 카프카를 즐겨 읽는다고 했다. 내가 아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변신뿐이라고 했더니 웃으며 괜찮다고 하던 당신이 기억난다. 주인공이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을 맞고 병들어가는 대목을 당신에게 들었다. 어째서 이런 대목을 들려 줬는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 했다.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사과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나와 같이, 당신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대화를 하곤 했는데,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면 그에 응하듯 나의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는 게 주 형식이었다. 약속은 없어도 그랬다. 나는 데미안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브락삭스에게 날아가기 위해 알을 깨야 하는 새를 말하자 당신은 또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데미안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이에 이유는 필요 없었다.
바람이 같은 곳을 맴돌다 매섭게 빠져나가고 발 아래로 얼음의 편린들이 으스러질 때에 받은 책은 거창한 양장본이나 화려한 표지의 것은 아니었다. 나를 생각하며 무거지 않은 걸로 골랐다고 말하고서 번역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당신이 좋았다. 다는 감사히 읽겠다고 답했다. 종이의 무게만을 지닌 그 책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의 당신은 내가 데미안을 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로썬 알 수 없다.
어쨌든 당신에게 책을 받음으로써 기꺼이 당신의 세계와 한 걸음 가까워진 나는 그 자체로 데미안임을 수긍했다. 좋아하는 것을 빗대어 나를 로그라고 부르던 당신에게 기록물을 받은 것이 기뻤다. 그렇기에 책이 소중했다. 차마 함부로 읽지도 못 한 채로 수십 번 표지만 열었다. 읽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 건 일주일 정도가 지나 조금 진정을 찾은 이후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활자만을 탐독하기도 했으며, 느긋하게 문단을 음미하기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정독하기도 했다. 읽었다. 어쨌든 읽었다. 나를 기록이라 칭해준 당신에게 선물 받은 기록물을 표지가 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어쩌면 알이 깨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그리며 읽고, 잊기 위해 읽고, 혹은 나를 잊기 위해 읽었다. 나의 세계를 스스로 상처 입혀 죽음의 문턱으로 가고 싶었다. 전부 자의였다. 사과는 그런 의미였다. 당신은 내게 의료였다.
프란츠 카프카를 즐겨 읽는다고 했지만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책이 그의 책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책을 다 읽었다고 전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가장 좋아하는 책 따위는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데미안이 기뻤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닌 책을 가장 정성들여 골라주었을 당신이 좋았다. 어쩐지 비틀린 세계이므로 알은 스스로 깨질 것이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준 데미안을 책장에 꽂아두었다. 단색의 책등을 보며 종종 생각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당신에게 변신을 선물했어야 했다고. 나는 당신의 기록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