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이었다. 비가 올 듯 말 듯 내리지는 않는 하늘이 짙은 회색을 띠곤 낮고 암울하게 내려앉은 채였다. 한바탕 쏟아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 모양인지. 찝찝함을 참지 못해 혀를 차고 도르네로는 근처의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집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공간을 채우는 건 거처의 행색을 갖추기 위해 둔 너절한 가구 몇 개가 전부였다. 이런 데서 잘도 사는군. 계속 혼자 살았던 건가. 한 사람이 빈 장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가를 입에 물었다. 앞머리를 잘라내고 불을 붙이는 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 대부분을 도르네로와 함께 하는 가운데, 기엔은 종종 긴 시간 집을 비웠다. 여기엔 가져갈 물건도 없는 걸. 명쾌한 말투로 답하는 기엔의 표정이 어쩐지 선명했다. 신기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는, 심지어 쫓기고 있던 자신을 흔쾌히 집 안까지 들인 녀석이니 평범한 놈은 아니겠거니 했는데. 욕심이 없나 싶다가도 돈을 받으면 좋아하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대답의 잠시 뒤에 딸려 나왔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뱉은 숨이 형체 없이 뿌옇게 흩어진다.
이젠 도르네로가 있으니까, 라니. 명쾌한 나머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논리다. 어떤 부분을 믿는 건지 알 수 없다.
하나의 생각이 길어지면 잡념이 끼어든다. 무리하게 생각을 끊고 일어나 시가의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재를 털어낸다. 난간의 아래로 무너지는 덩어리는 이내 알아보기조차 힘든 크기로 떨어진다. 여기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다. 가르칠 건 가르치더라도 떠나는 걸 주저해선 안 된다. 필요에 따른 관계일 뿐이다. 그렇지. 자신뿐만 아니라 기엔 에게도 좋을 게 없다.
필사적인 생각을 이어나가고 재떨이에 시가를 내려놓으려던 때에, 시야 끝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온다.
기엔 녀석, 비가 오기 전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태평한 눈짓으로 걸음걸이를 쫓는다. 답지 않게 다급한 발걸음이 골목에 울렸다. 품에 무엇인가를 안고 있는 건지 영 어색한 달음박질이 신경 쓰였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까지 다가오면 얼굴에 남은 선명한 멍이 보인다. 친구라는 놈들에게 맞고 들어온 건가. 생각의 도중에 이미 문 앞으로 달려가는 자신이 있었다.
"……도르네로."
"무슨 일이야, 기엔. 또 맞고 들어온……"
"고양이가……"
얼굴의 흉터를 살피느라 내려가지 못했던 시선이 그제야 기엔이 품에 안은 것으로 내려간다. 체구가 크지 않은 기엔의 품 안에도 들어갈 만큼 작은 짐승. 숨을 쉰다는 것을 겨우 알리듯이 옅게 움직이는 배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인 마냥 자연스럽다. 고개를 숙인 채로 들지 못하는 기엔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생각해보면 돈 도르네로라는 존재는 생명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익숙했다.
"가끔 밥을 챙겨주던 아이인데……,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그 녀석들에게 맞은 거냐?"
"……응."
위로에는 능숙하지 못 한 성품이었으므로 할 말을 쉽게 찾지 못 하는 것은 당연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라고? 무슨 말을 해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위로 올리자 식어가는 체온이 느껴졌다.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나의 틈도 없이 마주한다. 잠시 숨을 들이키고 길게 뱉어낸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도르네로……."
"이 녀석은 틀렸어."
"하지만……"
"기엔."
그 때까진 옆에 있어 줘. 평생 해 본 적도 없는 낯간지러운 말이란 걸 뱉은 이후에 깨달았다. 별수 없었다. 이런 데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 * *
작은 생명을 추모할 공간도 두지 못 해 다른 이의 화단 구석에 몰래 묻어 주고 온 후에야 기엔은 종일 울음을 터트렸다. 잊어버리란 말이 무색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걸까.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챙겨줬더라면 괜찮았을까. 만약, 내가, 좀 더. 댐이 터지듯 흘러나오는 자책의 말에 위로를 해준대도 서툴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이 좋았으려나. 후회해도 말을 돌릴 수는 없다. 겨우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친다. 젖은 눈이 꼭 오늘의 날씨 같았다.
"……도르네로는, 이렇게 가 버리지 않을 거지."
비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얼마 내리지 않았음에도 음색이 굵다. 곧 쏟아질 기세였다.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