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든다. 격룡검이 아닌 목검의 감촉이 생경하다. 발도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정자세를 취한다. 눈을 감는다. 상대는 정해져 있었다. 눈을 뜬다. 검은 허공을 가른다.
현대에 이르러 그 의미의 많은 것이 퇴색되었다지만 검술은 원래 죽이기 위한 기술이었다. 단순히 휘둘러 베는 것에서 시작하여 정교하고 체계적인 것들이 정립된, 인류 역사와 함께하는 살생법. 명신용신류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벤다는 뜻이 되므로. 평소라면 머리가 아프다며 깊이 파고들지 않았을 생각을 이어간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마물을 베는 자신은 결국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베고 있을 뿐이 아닌가. 이거, 아저씨가 들으면 분명 시답잖은 소릴 한다고 했겠지. 상대하는 건 단지 마물일 뿐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욘 없다면서. 물론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같은 검사라면, 검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크게 휘둘러졌던 검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부딪힌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달빛이 시릴만큼 밝았다. 오늘 밤은 더 이상 검을 휘두르고 싶지 않다. 탈력감인가.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만족하지 못 했나. 아니, 더 가능성 없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다. 어쩐지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다.
"벌써 끝인가? 켄지."
"아, 으응."
좀 쉴래. 여전히 집중력이 짧군. 시끄러워. 게키류켄의 목소리에 대강 대답을 마치고선 조금 억눌려있던 숨을 길게 내쉰다. 한 합동안이었다지만 악문 이가 약한 고통을 호소했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 하고 한참을 돌리다 겨우 발치에 내려놓는다. 갈 곳 없는 질문이 함께 맴돈다. 답을 해 줄 존재는 없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나루카미.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숨을 짧게 들이킨다. 불렸던 이름이 화상처럼 남았다. 그건 대화였을까.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했던 몸짓 그 이상의 것이었을까. 격룡검을 쥐었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온전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쟈크문, 너는 만족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