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저의 여름나기는 혹독한 구석이 있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연이어 이어진 게 그 원인이었다. 임시방편의 하나인 긴지로 호의 에어컨은 대체로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으며, 그마저도 오래 틀어지지는 않아 불만이 폭주했다. 이렇게 더울 일이냐며 한 꺼풀이라도 더 시원해지기 위해 팀 재킷은 벗어 던져진 지 오래였다. 어떻게 좀 해 봐, 소스케.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하냐?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불평들을 웃는 얼굴로 듣던 렌이 느리게 말을 꺼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러 갈까요?"
따라와 줄 거죠, 소스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근처 지구를 몇 번인가 돌아 그늘로 긴지로 호가 완전히 덮이는 곳에 무사히 주차를 해 둔 이후에야 렌은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 더운날에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가자고? 싫슴까? 아니 그건 아닌데. 멀리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소스케는 속으로 말을 되뇠다. 이럴 때의 렌은 거절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시원한 바람을 찾아 건물의 내―카페라든지, 편의점이라든지 하는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한낮인데도 의외로 길을 걷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두 사람 분의 발걸음 소리가 열기와 습기를 가득 머금고 느긋하게 울린다. 자신의 한 걸음 앞을 걷는 렌이 낯설다고, 소스케는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항상 옆이었는데. 한 마디로 소스케는 지금 거리감을 느끼는 검다. 그런 말을 렌이 하면 어떡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예의 말투에 입 안으로 웃음을 삼켰다.
"덥죠."
"아? 어, 응……, 당연히 덥지!"
"……이런 날씨라서 소스케랑 걷고 싶었슴다."
자신을 돌아보는 얼굴이 너무나도 편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기에 굳이 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날씨라서 걷고 싶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걷기 좋은 날씨는 따로 있지 않나. 어느 쪽이 메인인 건지 아무래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작은 마트는 여름을 맞아 몇 개에 얼마쯤 하는 세일 중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건가. 그런 물음을 하기도 전에 어린아이의 한 품만 한 바구니를 들고 온 렌이 말을 얹었다. 여기가 가장 싸더라구요. 식비가 아슬아슬하니까 어쩔 수 없죠. 조금 뻑뻑한 감이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자 흘러넘치는 냉기가 어쩐지 아찔했다.
한토랑 군페이가 뭘 좋아하더라. 뭘 사가도 잘 먹을 것 같슴다만. 비닐 사이를 뒤적거리는 손이 저릿해질 즘에야 마음을 결정해 올려놓자 비슷한 포장지를 가진 아이스크림을 렌이 몇 개쯤 더 올려놓았다. 사람이 넷인 걸요. 렌, 너는? 저는 이거 하나면 됨다. 레몬 맛이라고 적힌 하늘색 포장지의 하드였다. 의외네. 좀 더 달거나 담백한 취향일 줄 알았는데. 렌이 옅게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 * *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기에 건물 밖을 나온다고 햇빛이 덜 날카롭거나 아지랑이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공기가 덜 뜨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거겠지만. 한 손에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긴 비닐봉투를 대강 들고서 다시 눅눅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나란히 선 모양새였다. 걷는 속도를 맞춰 걸으며 비닐봉투를 뒤져 아이스크림을 두 개 꺼낸다.
"지금 먹을 검까?"
"두 개 정도는 괜찮잖아."
수고비 같은 거라고 하지 뭐. 뜯어지지 않은 하늘색 포장지의 것을 건네자 렌이 웃으며 받아들었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고 일견 담백한 흰 색의 내용물이 드러난다. 조금 하늘빛을 띤 느낌이 눈부시기까지 했다. 들고 있는 사람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며 소스케는 섬세하지 못 한 손길로 초코 맛 아이스크림의 봉투를 뜯어냈다.
긴지로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혀에 닿은 단 맛이 어릴 때 곧잘 사먹곤 했던 것의 맛과 비슷해 작게 히죽였다. 걸음은 느리고 해는 뜨거운 그 느낌이 기묘했다. 기묘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었는데.
옆을 돌아보면 렌과 눈이 마주친다. 웃었다.
"소스케는 좋아했던 사람 있슴까?"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미묘한 소리를 내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놀랄 질문임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한 입도 먹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든 렌의 손이 내려갔다. 녹아 흐르더라도 손에는 닿지 않을 형태였다. 형태를 유지하는 게 고작인 얼음 덩어리의 겉면을 따라 흐르다 종국에는 바닥을 향해 방울져 떨어지는 모습이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렌의 발걸음에선 레몬 향이 날까.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길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침묵이 길어진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마치 그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렌이 나무 막대를 쥔 손을 들었다. 여전히 녹아 흘러도 손에는 닿지 않을 형태로.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물었슴다."
"첫사랑?"
"으음, 네, 아마도."
있었다면 있는 거지, 아마도는 뭐야. 삼분의 일 쯤으로 희석된 불평을 얹어 웃음을 터트리자 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요. 여전히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걷고 있다.
"언제였어?"
"고등학교 이 학년 때쯤의 여름인가, 그 때요."
"꽤나 정확하네. 어떤 사람이었는데?"
"같은 반 부반장이었슴다."
학창시절의 청춘이라니, 어쩐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의 나무 막대 끝을 이로 씹으며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추억을 회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손 끝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반장이어서, 자주 같이 있었거든요."
"오, 그러다가 사랑이 시작한 거고?"
"한 마디로 그런 검다. 같이 공부도 하고, 하교도 하고."
"뭐야, 장난 아니잖아 렌. 그거 짝사랑으로 안 끝났을 것 같은데?"
일순 말이 멈춘다.
"짝사랑으로 끝났어요."
그리고 마주친 시선이 생경했다. 자신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렌이 이전에 있었던가. 있었을 리가 없다. 처음이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멋쩍은 손으로 씹던 나무 막대를 이에서 떼어낸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여전히 먼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거짓말 같은 순간이다. 왤까.
결국 이번에도 침묵을 깬 쪽은 렌이었다.
"졸업하면 고백하려고 했는데, 그 해 겨울에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그제야 한 입을 베어먹은 아이스크림이 무력하게 형태를 무너트려 간다. 렌은 그 한 입이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음미하고선 남은 부분을 근처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찰박, 힘 없는 덩어리가 부딪혀 뭉개지는 질척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 이야기를 왜 들려주는 건지 소스케는 차마 묻지 못 했다. 가냘픈 육신을 세상으로부터 지키지 못 한 것에 대한 염세적 죽음의 표현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돌아올 답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거겠지. 렌의 발걸음에서는 레몬 향이 날 것이고,
그 해 여름은 혹독한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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