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촬 1일 전력
: 나의 주군, 빛
사람이 빛이 되면 안 되는 걸까. 류노스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구원이 되면 안 되는 걸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종종 떠올랐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주군이 빛이 아니었나요. 그런 질문은 하지 못했다. 해서는 안 될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바 타케루는 인간이다. 신神 같은 존재가 아니다. 당연한 명제였지만 의외로 그걸 깨닫고 있는 사람은 적은 듯했다. 왜 그런 건지, 류노스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낯선 존재일 테니까. 매일 아침 로드워크를 가다 보면 익숙해지는 마을 사람들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시바 가에서 숙식하는 젊은이, 쯤 되는 자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도 주군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에는 조목조목 의견을 펼쳤다. 그게 신기했는지 청년은 싹싹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네, 하는 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그게 불만이었던 것 같다. 시바 타케루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그렇다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인 건 아니었다. 아마도 신켄저라면 전부 알고 있겠지. 히코마 씨는 너무 당연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래. 자신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 사실에 류노스케는 탈력감을 느끼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기쁜 일이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자신의 주군이 어떤 사람인지. 시바 타케루는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명제를.
그리고 그때 느낀 감정을 정확히 명명했어야 한다.
구원론
비가 내렸다. 무시하고 나갈 수준이 안되는 장대비였다. 로드워크를 포기하고 집 안에서 짧게 하는 스트레칭의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합의를 본 후 류노스케는 가만 창가에 기댔다. 빗소리는 안정감을 준다. 조금 가라앉아 달라붙는 습기 어린 공기도, 쏟아지는 물방울들도, 거세지는 물길도 전부 좋아했다. 아침의 일정이 반쯤 날아가 연습 시간까지 텀이 생겼으므로 명상이라도 할 요량으로 눈을 감는다. 빗소리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신켄저 때의 기억. 나쁘지 않았다. 앞뜰에서 하는 모지카라의 연습이 불가능해져 실내로 장소를 옮기고, 그래도 눅눅해 종이가 과도하게 먹을 흡수했던 날이었다. 이런 거로 어떻게 글자를 쓰라는 거라며 툴툴대는 치아키와 그런 치아키를 보며 불평이 많다며 혼을 내는 히코마 씨의 사이에서 멍하니 종이에 집중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주군. 그런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주군. 시바 타케루, 당신의 눈빛.
눈을 뜬다. 비가 내렸다.
자신은 그곳이 아니었다.
* * *
그는 자신의 주군이었고, 자신이 싸우는 이유였다. 정확히는 싸우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 '사람을 지킨다.'라는 명제에 유일하게 앞서 있는 존재. 목숨을 맡긴 존재. 그리고, 그는. 생각을 지운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다.
검을 든다. 시바 가에서 나온 이후로 검을 드는 것은 오랜만이다. 혈제 도코쿠 이후로 다시 외도중이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존재를 위해 슬픔이나 분노를 강요받지 않고, 목숩을 위협받지도 않는 세계. 그 세계에 이바지하기 위해 싸우던 나날을 떠올린다. 힘겨웠지만 사랑스러웠던 날들. 신켄 마루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다잡아 정 자세로 선다. 허공을 마주하고 베어 내린 허공을 따라 한 바퀴를 돈다. 좁은 공간이었으므로 큰 움직임에는 제약이 있었다. 차라리 이번 공연에 검무를 접목시켜 보기 위한 연습이라는 이유를 대고 연습실로 갈까 싶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뒤늦게 거기에 비가 와서 큰 물건을 들고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핑계를 댔다. 누가 봐도 선명한 핑계였다. 검을 든 모습을 굳이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신켄저로 싸웠던 일 년. 그동안, 당신의 앞에서는 몇 번이고 검을 잡았는데.
* * *
"자, 그만, 그만! 류노스케, 잠깐 쉬고 아까 그 동작 다시 한번만 해 보자."
"알겠습니다!"
CD를 담은 카세트 플레이어가 달칵 소리를 내며 멈췄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흥건한 땀을 옆에서 건네주는 수건으로 닦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목이 건조했다. 두 시간 내리 이어진 연습이었다. 움직임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공연이니 손가락 끝 하나까지도 섬세해야 한다. 신타로와 둘이서 기획한 공연이니 더더욱 실수 같은 건 하나도 없이 만들고 싶었다. 잠시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자 T가 다가왔다. 나란히 앉아 찬물로 목을 축이는 틈에 T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류노스케 선배, 아까 말인데요……"
"아, 혹시 고쳐야 할 부분이라도 보였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류노스케 선배는 몸 선이 예쁘신 것 같아서요. 생각지도 못한 칭찬이 돌아와 놀란 표정을 짓자 T가 사과했다. 아니,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닌데, 그런가? 네, 혹시 가부키 말고도 운동을 하시나요? 류노스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면 당황할까 싶어 잠시 말을 골라 검도를 잠깐 배웠다고 했다. 자신이 신켄저로써 싸웠다는 걸 굳이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자부심이나 뭐, 그런 것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 생각나기 때문이었다.
짧은 쉬는 시간 동안 T는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류노스케 선배만큼 예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저도 검도를 배워야 하나 봐요. 다른 것도 도움이 될까요? 유도나 그런 거요. 자꾸만 마음이 이상해 류노스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연습하면 될걸. 검도도 나쁘지 않지. 운동이라면 신타로에게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거야. 자꾸만 시바 타케루의 생각이 났다. 500mL 페트병에 든 물 마지막 한 모금을 비우고 류노스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연습해야 해서. 아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사실 사과를 받는다면 다른 쪽으로 받고 싶었다. 말하지 못했다.
다시 플레이어가 돌아간다. 발을 벌려 자세를 잡고 축이 되는 곳을 기준으로 몸을 움직인다. 손에 들린 방울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다가, 딸랑, 내리며 뛰어오르고, 딸랑, 바닥에 닿아 몸을 돌리고, 딸랑딸랑, 그만, 잠시 멈췄다가, 방울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옷자락의 움직임까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몸을 돌린다. 방울 소리가 거슬렸다. 자, 그만, 자꾸 힘이 들어가는 것 같네. 죄송합니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실내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렸더라도 음악에 묻혔을 것이다.
* * *
결국 그날 연습은 괜찮게 시작해서 엉망으로 끝이 났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 그런 말을 들으며 사과를 거듭했다. 이유를 알고 있어서 더 엉망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좋은데, 당신 생각이 나는 날은 울음이 날 것 같아서 엉망이다. 사실 비 아래서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비가 오던 날에 나타난 외도중과 싸우기 위해 달려나가던 날이 있었다. 히코마 씨가 알려준 장소를 향해 옷이 젖는 건 상관도 하지 않고 모두가 내달렸다. 물웅덩이 위를 달려 튀는 물. 쿠로코들을 대동할 시간도 없이 허공에 모지카라를 쓰고 변신했다. 끊임없이 내려가는 체온과 평소보다 둔해지는 감각과 주변의 소리가 차단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고양감. 젖은 슈트와 무거운 검과 미끄러지던 발로 모두가 제 컨디션이 아닌 와중에도 류노스케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곁에 있는 주군을 바라본다. 그가 자신으로 둘러싸인 것만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생각의 끝에서 류노스케는 비가 멈췄으면 했다. 나의 주군, 그러니, 그는 자신의 빛이어도 괜찮았다. 당신은 인간이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끝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생각을 멈추고 싶어 다시 검을 잡았다. 움직인다. 번잡한 머릿속으로 아까의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 당신이 인간이었으므로 이케나미 류노스케의 빛이고 구원이었다며 세계에 역설을 외치고 싶었다.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비가 오는 날의 이케나미 류노스케는.
사랑이었다. 시바 타케루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이케나미 류노스케는 시바 타케루의 가신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시바 타케루는 신이 아니었지만 그 명제에 앞서 있었다.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평생 울겠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그날 밤만을 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평생을 울 것이었다. 차라리 울었어야 했다.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 비는 멈추지 않는다.
* * *
이케나미 류노스케는 시바 타케루로 구원받고 싶었다.
이케나미 류노스케는 시바 타케루의 구원이 되고 싶었다.
시바 타케루는 인간이다. 신神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케나미 류노스케는 알고 있었다.
* * *
장마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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