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답장
류노스케.
* * *
그리고는 펜을 놓는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종이로부터 시선을 거둔다. 이름의 뒤에 이어질 문장을 시바 타케루는 아직 생각해내지 못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자신도 아직 모르는 채다.
종종 류노스케에게 연락이 오는 상상을 했다. 가장 요란스럽게도 자신을 따르던 녀석이었으니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일상의 모든 시시콜콜한 것들을 담은 문자가 연이어 몇 통이 온다거나, 여유가 있을 시간을 골라 전화가 걸려 온다거나 하는 것들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차올랐다. 전화라면 겸연쩍음과 기쁨이 반쯤 섞인 목소리겠지. 어쩌면 쑥스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자신의 이야기만 하지 않았냐며 뒤늦게 붙일 사과엔 괜찮다는 말로 답하자.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방식도 적잖이 어울렸다. 예를 들면 며칠 간격으로 날아올 편지 같은 것. 나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한 말로는, 좋았다.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여러 이야기들은 아마 나름대로 고심해서 적은 것들이겠지. 어느 날엔 자신이 기획한 공연이라며 날짜가 적혀 있기도 할 테고. 공상은 제지 없이 그려져 나간다. 마치 마땅히 처음부터 그래야 했다는 듯이.
자신이 문장을 쓰지 못 하는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연락을 한다는 선택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하지 않았을 뿐. 그제야 주군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자신을 떠올린다. 신켄저로 싸울 사무라이들을 부르기 위해 활을 잡은 것도 내가 아니라 할아범이었지. 그 때야 혼자서도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처음부터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자신이 눈에 비쳤다.
손 안에서 굴리던 펜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주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쓸 문장을 모르는 채다. 펜을 들고 있어서 뭘 할 건지. 의미는 없다. 굴러간 펜은 첵상의 구석까지 들어갔다. 차라리 새 펜을 꺼내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문장을 적지 못 하는 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볍게 책상을 두드릴 뿐이다.
* * *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한다.써야 할 문장이 아니라 쓰고 싶은 문장을 생각해내 보는 건 어떨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편지의 기원은 전하고 싶은 말이니까. 이거라면 누군가에게 물어볼 것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엔 적격의 이유다. 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남겨져 펜을 쥔다. 낯선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쉰다. 하고 싶은 말을 센다.
류노스케, 너는 차 한 잔을 마신 이후에도 젖은 나무의 향과 옅은 연기가 섞인 향을 말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 언제, 쿠로코들이 준비해 준 차의 향에 느지막한 오후의 봄햇살 같다는 말을 붙인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입 안의 여린 구석을 감싸고 내려가는 따뜻한 차는 발끝까지 기운을 돌게 한다고, 맑은 금색의 차 위로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은은한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퍽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내뱉는 문장들을 칭찬하자 쑥쓰러워 하던 모습까지.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일 뿐입니다, 하던 말에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이제 와 깨닫는다. 그 자리에서 어울리는 말은 그게 네가 하는 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항상 깨닫는 게 조금씩 느렸다.
네가 휘두르는 검은 항상 아름다웠고. 제대로 몇 번 합을 겨뤄보지 못 했음을 이제와 아쉬워한다. 단순하게 우열을 가르기엔 정석도 상황 대응도 달라 겨뤄봄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언제나 쥔 손의 주인만큼이나 아름다운 검의 궤적이었다. 단정하고, 올곧아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을 듯 했다. 품이 넉넉한 도복의 소매가 가지런하게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는 모습마저 검의 움직임에 알맞았다.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바라보다 어느새 '이케나미 류노스케'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 때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사복 차림으로는 죽도를 잘 들지 않았었지. 신켄 마루는 자주 들고 다녔으니 그걸로 괜찮은 걸까.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말은 쓰기 전 조금 더 생각을 다듬지 않으면 편지에 군더더기가 묻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군더더기만으로도 쓰는 게 편지겠지만.
너를 붙잡아 할 말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때까지 새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물론 먼저 말이 멈추는 건 자신의 쪽이리라. 할아범이나 마코, 치아키에게도 들었듯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에 반해 류노스케는 말이 많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게 과해 한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것을 류노스케의 단점이라고 칭하는 이는 얼마 없었다. 원래 성품이 솔직하니까.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건 조금 부족했다. 류노스케는 즐겁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심기에 맞지 않는 말이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아 종종 싸우기도 했으나 ― 특히 겐타와 치아키에게 그랬다. 사소한 다툼이 일 때마다 마코가 옆에서 한 마디씩을 붙여 조용히 만들던 모습이 익숙했다. ― 먼저 남을 헐뜯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편지를 쓰려는 과정에서야 그게 자신을 위한 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엔 듣기만 해도 좋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더듬거리더라도 받은 만큼 말해줘야 함을 알게 되었으니. 편지가 아니더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때가 쓰는 때보다 길고 괴롭겠지. 정갈하게 이름과 주소만이 적힌 흰 색 봉투를 받았을 때에야 든 생각이었다. 사소한 일로는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며 편지는 물론이고 전화며 문자도 하지 않았던 걸까.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유추하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자유롭지 않다. 류노스케가 자신을 이름으로 불렀던 날에, 시바 타케루는 자신이 모르는 이케나미 류노스케를 마주했으므로. 류노스케가 자신에게 맡긴 목숨을 자신은 아직도 받아두고 있는 채였다. 그러니 그만큼의 태도와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다. 말을 고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건너 자신에게 보내 온 편지이니, 류노스케, 답장이 될 이 편지는 주군으로써인 동시에 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의 편지가 되겠지. 처음 써 보는 연문이었다.
나는, 너의 주군은, 시바 타케루라는 인간은 잘 지내고 있다. 이 말이 듣고 싶어 류노스케가 빼곡히 적어 내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새벽달을 받으며 붓을 움직이는 그를 상상한다. 긴 편지지의 적힌 내용 모두가 오롯이 자신을 향한 내용이다. 주군의 독단으로 이것을 연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네가 편지를 쓰던 그 날 밤의 달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므로. 시릴 만큼 푸르게 너의 방에 쏟아졌을 것이므로. 밤이슬에 휩싸여 새벽을 걷는 너도 아름답겠지. 문장은 전부 시바 타케루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온 하루를 공들여 류노스케 너를 부른다.
그러니…….
* * *
만나러 가겠다.
* * *
펜을 내려놓을 즘에는 저녁놀이 곳곳이 홍화 꽃이 물든 주홍빛 베일처럼 길게 온 땅 위로 늘어진다. 황혼의 시간은 백귀야행의 시간이라고도 하던가. 도착도 전에 잡아먹히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 온전히 해가 지면 편지를 부치기로 한다. 흰 이슬을 맞는 편지도 운치가 있지 않나. 낭만에 빠진 청년이 하늘을 향해 눈을 굴린다. 어디선가 휘파람새가 울고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어둠이 오기 전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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