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캬게야마는 종교 따위는 믿어본 역사가 없다고 말한다. 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 해를 스무 번 넘겼던 자신이 바닥이 아닌 심연 가장 깊은 곳까지 추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벌이란 말인가. 할렐루야, 아멘, 그런 말들과, 찬양합니다, 오직 주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 찬송합니다, 그런 기도들을 하지 않아서, 그런 인간에게는 지옥이 어울린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십자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메시아의 품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참으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감고서도 손 위에 있는 것을 읽는 마냥 부드럽게 발음이 울렸다. 음색은 자장가에 비슷했으나 지나치게 낮았고, 들려준다기엔 지나치게 혼잣말 같았다.
종교가 있는 학교를 초등부부터 다녔다고 했다. 세례명이 무엇인지는 들려주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중요하지 않겠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장소만 조금 바꾼다면 독실하고 신실한 신자로 보일 것 같았다. 당장 지금도 듣고 있는 자신이 없다면 길거리에 앉아서도 기도를 올리고 성경 구절을 외며 믿음을 잃지 않는 순교자로 보일 텐데. 칼 마르크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으나 지금 이 순간의 신도들에겐 진통제보다는 중독제에 가까웠다.
그런 것들을 읊어도 이제는 지옥이다.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종교의 경전을 읽어줌은 아이러니, 패러독스, 안티노미, 아포리아 그러한―, 그러한 경건함이었다. 신이 없는 신도들이 아닌가.
문득 손을 뻗는다. 뻗음에도 불구하고 닿지 않을 것 같아서, 선악과를 씹어삼킨 인간의 원죄를 느끼고, 밤은 내려앉았는데도 그는 마치 빛 같고, 형, 나만, 나만 지옥에 있는 거면 어떡하지, 그래서, 당신은 단지 한 장의 검은 천으로 빛을 가렸을 뿐이라, 아직도 밝아 구원의 여지가 있는데, 할렐루야, 아멘,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던 나는, 형이 읽어주는 것들이 진통제도 아닌 단순한 마약이 되어버린 나는,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눈을 감으면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아멘…… ……